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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곰희 26.10.27

[박곰희] 교과서를 덮은 시장

교과서가 알려주는 건 ‘방향’이지 ‘시점’과 ‘크기’가 아닙니다. 잘못된건 무조건적인 교과서 한 줄로 시장을 맞히려는 시도입니다.

안녕하세요, 박곰희입니다.
경제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너무 기본이라 시험에도 잘 안 나오는 문장들이죠. 딱 세 개만 꼽아 보겠습니다.
첫째,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떨어진다. 은행 이자가 넉넉해지면 굳이 위험한 주식을 살 이유가 줄어드니까요.
둘째, 주가가 오르면 외국인 돈이 들어오고 원화는 강해진다. 한국 주식을 사려면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하니까요.
셋째, 전쟁이 나면 금값이 오른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가장 오래된 안전자산으로 숨으니까요.

그런데 올해 시장은 이 세 문장을 모두 거꾸로 풀었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4년 만의 최고치로 올라섰고 미국 중앙은행은 3년 만에 금리를 올렸는데, S&P 500은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코스피가 반년 만에 두 배 넘게 오르는 동안 외국인은 120조원 안팎을 팔고 나갔고,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50원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고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드는 지금, 금값은 연초 고점에서 4분의 1 가까이 빠져 있습니다.
교과서가 틀린 걸까요, 시장이 이상한 걸까요? 오늘은 이 기괴한 장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지표들이 제각각 움직이는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장면 1. 금리는 24년 만의 최고, 주가는 사상 최고

10월 7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35%까지 올랐습니다.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미국 연준은 9월 기준금리를 0.25%p 올려 3.75~4.00%로 만들었는데요. 2023년 이후 첫 인상이었습니다. 교과서대로라면 주식시장에는 찬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런데 S&P500은 바로 전날인 10월 6일 7,818로 사상 최고 종가를 새로 썼습니다.
교과서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주식의 값은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지금 가치로 바꾼 것인데, 금리가 높을수록 미래의 돈은 더 많이 깎여서 계산됩니다. 10년 뒤의 100만원은 금리가 2%일 때보다 5%일 때 훨씬 초라해 보이죠.

그런데 이 계산에는 깎는 쪽만 있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벌어들일 돈 자체도 있습니다. 올해는 금리가 미래의 돈을 깎는 속도보다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AI 투자 붐을 타고 반도체와 빅테크의 이익 전망이 계속 올라갔고, 금리가 오른 이유도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잘 돌아가서였습니다. 2분기 미국 성장률은 1.5%에서 2.2%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금리가 올랐는데 주가도 오른 게 아니라, 경기가 좋아서 둘 다 오른 셈입니다.
다만 이 균형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습니다. 10년물 금리가 5.35%를 찍은 날, S&P 500은 하루 만에 사상 최고치에서 밀려났습니다. 교과서의 중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더 큰 힘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장면 2. 코스피가 오를 때 원화는 약해지고, 빠질 때 강해졌다

한국 시장은 더 극적이었습니다. 코스피는 1월 2일 4,309로 출발해 6월 19일 장중 9,385까지 올랐습니다. 반년 만에 두 배가 넘는 상승입니다. 교과서대로라면 외국인 돈이 밀려 들어오고 원화는 강해졌어야 합니다.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외국인은 상반기에만 한국 주식을 120조원 안팎 팔았고, 5월 한 달에만 44조원이 넘었습니다. 외국인이 던진 물량은 개인 투자자가 받아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7월 1일 장중 1,559원까지 올라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주가는 사상 최고인데 원화는 금융위기 수준으로 약해진 겁니다.

더 기괴한 건 그다음입니다. 6월 고점 이후 코스피는 한때 30% 가까이 급락했고, 지금은 7,000선 언저리에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내려왔습니다. 주가가 빠지는 동안 원화는 오히려 강해진 거죠. 한국은행이 7월과 8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한미 금리차가 좁혀졌고, 역대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 속에 수출기업들이 쌓아둔 달러를 내다 판 영향이 컸습니다.

정리하면 올해 코스피와 환율은 오를 때도 따로, 내릴 때도 따로 움직였습니다. 해외 ETF를 들고 있는 분이라면 체감하셨을 텐데요. 환율이 1,559원에서 1,350원 안팎으로 13% 넘게 내려오는 동안, 환노출형 해외 ETF는 그만큼 원화 기준 수익을 내줘야 했습니다. 미국 지수는 사상 최고인데 내 계좌는 생각보다 덜 오른 이유입니다.

장면 3. 전쟁과 100달러 유가, 그런데 금은 하락

세 번째 장면은 금입니다. 금값은 1월 말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5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 뒤 3월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터졌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속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전쟁, 유가 급등, 잘 잡히지 않는 물가. 금이 오를 이유는 다 모였는데, 금은 지금 4,100달러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고점 대비 25% 가까운 하락입니다.

여기서는 교과서끼리 부딪혔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교과서에는 ‘금리가 오르면 금은 약해진다’는 문장도 있거든요. 금은 이자도 배당도 주지 않습니다. 미국 국채만 사도 연 5%가 넘는 이자를 주는데, 굳이 이자 없는 금을 쥐고 있을 이유가 약해진 겁니다. 연초까지 너무 빠르게 오르며 불안이 미리 가격에 반영된 면도 있고요. ‘전쟁이면 금’이라는 페이지와 ‘고금리면 금 약세’라는 페이지가 동시에 펼쳐졌고, 올해는 뒤쪽 페이지가 이긴 셈입니다.

교과서는 ‘방향’만 알려준다

세 장면을 보고 나면 교과서를 덮고 싶어지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교과서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과서가 알려주는 건 ‘방향’이지 ‘시점’과 ‘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주가를 누르는 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이익이 늘어나는 힘이 더 클 때는 가려집니다. 주가와 환율 사이의 연결고리도 존재합니다. 다만 금리차, 수출 대금, 외국인의 차익실현 같은 다른 힘이 한꺼번에 작용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시장에는 언제나 교과서 여러 페이지가 동시에 펼쳐져 있고, 어느 페이지가 이길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리가 오르니 주식을 팔아야겠다”, “전쟁이 났으니 금을 사야겠다”처럼 교과서 문장 하나로 매매를 결정하는 건 위험합니다. 올해 그렇게 했다면 사상 최고치 행진을 구경만 했거나, 금을 고점 근처에서 샀을 겁니다. 논리는 맞았는데 계좌는 틀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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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곰희 / 120만 유튜버ㅣ박곰희 TV 채널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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